.fromOuterspace at 2012. 11. 21. 00:17

"흐흠, 이것은 좀 보기드문 경우군요."

와그너 박사는 애써 태연한 듯이 말했다.

"내가 아는 한, 티벳의 수도승에게 자동 연산 컴퓨터를 제공해 달라고 요청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꼬치꼬치 캐묻고 싶지는않습니다만, 여러분들이 그런 기계를 사용하리라고는 거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혹 실례가 안 된다면, 그것으로 무엇을 하려는지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기꺼이 그러죠."

그 라마승은 비단 승려복의 매무새를 가다듬고는 화폐 환산에 사용했던 계산자를 조심스럽게 챙기면서 대답했다.

"당신들의 [마크 5] 컴퓨터는 십진법을 포함한 어떤  수학적  연산도 수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려고 하는 일은  숫자가  아니라 문자에 관련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기계가 숫자들의 나열이  아니라 문자들을 인쇄하도록 컴퓨터의 출력회로를 수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좀 이해가 안 됩니다만..."

"이것은 우리가 지난 3세기동안 추진해 온 계획입니다. 사실 라마 사원이 설립되었을때 부터지요. 당신들의 사고방식과는 좀 동떨어진 것이긴 합니다만, 제가 설명하는 동안 마음을 열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물론이지요."

"실제로는 매우 단순한 작업입니다. 우리는 가능한 모든 신의 이름을 수집하여 목록을 작성해오고 있습니다."

"네? 뭐라고요?"

"우리는 우리가 고안한 문자로 모든 신의 이름들을 아홉 글자 이내로 표시하여 기록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라마승은 침착하게 얘기를 계속했다.

"그래서 당신들은 그 작업을 3세기 동안 계속 해 왔군요. 그렇죠?"

"그렇습니다. 그 일을 마치려면 1만 5천년 가량  걸리리라고  우리는 예측하고 있습니다."

"아하!"

와그너박사는 멍해진 듯이 보였다.

"당신들이 왜 우리 컴퓨터를 쓰려는지  이제야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 작업의 목적은 정확히 무엇이지요?"

라마승이 잠깐동안 머뭇거렸으므로, 와그너는 그를 화나게 만든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나 대답하는 라마승의 목소리에는 화가 난  기색은 전혀 없었다.

"괜찮다면 그것을 하나의 의식이라고 생각하시오. 그러나 우리  신앙에서는 기초적인 부분입니다. 그 수많은 초월적 존재들의  이름,  여호와, 알라 등등은 모두가 그저 사람이 만든 호칭에 불과합니다.  여기에 좀 미묘한 철학적 문제가 있습니다. 토 아닙니다만,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글자의 조합들 중에는 진짜  신의  이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체계적인 글자들의 순열에 의해 우리는 그 것들을 모두 목록화하려고 노력해왔습니다."

"아아,   알겠습니다.   당신들은 AAAAAAAAA...   부터   시작해서 ZZZZZZZZZ... 까지 작성해 오고 있었겠군요."

"바로 그렇습니다. 비록 우리 자신의 특별한 문자를 사용하는 것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이 문자를 다루기 위해 전동 타자기를 좀 손보는 것은 물론 간단한 일입니다. 사실 더 중요한 문제는, 필요없는  조합들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적당한 회로를 고안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조합도 세 번이상 발생해서는 안 됩니다."

"세 번이라고요? 두 번을 말씀하시는 것이겠죠?"

"세 번이 맞습니다. 그 이유를 설명하자면 너무 길어질 것같군요.

당신이 우리 문자를 이해한다고 할지라도 말이지요."

"그야 그렇겠지요. 계속하십시오."

와그너는 급히 말했다.

"다행히 이 작업을 당신들의 자동 연산 컴퓨터로 수행하면 간단한 일이 될 것입니다. 일단 처음에 한 번 알맞게 프로그램되기만 하면, 계속 해서 각각의 글자들을 순서대로 나열하고 그 결과를 인쇄할  것입니다. 1만 5천년 정도 걸려야 될 일을 100일이면 해 낼 수 있습니다." 

와그너 박사는 저 아래 맨하탄 거리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도시의 소음을 거의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지금 다른 세계, 즉 사람이 만들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산들이 있는 세계에 와 있는 것만 같았다. 그 외딴 산꼭대기에서 이 수도승들은 자손 대대로 끈질기게  그  일을, 즉 아무 의미없는 문자들의 조합 목록을 작성하고 있었다. 인간의 어리석음에는 어떤 한계가 있는 걸까? 여전히 그는 원초적인 의문의 실마리를 잡을수가 없었다. 아무튼 고객은 언제나 옳은 것이니까....

"물론 우리는 마크 5 컴퓨터를 개조해서 그 목록을 인쇄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것보다도 설치와 유지문제가 좀 걱정됩니다만. 티벳으로 나가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군요."

"그것은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 컴퓨터의 각 부품들은 비행기로  나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작습니다. 그것이 바로 당신들의 기계를  선택한 이유지요. 당신이 인도까지 부품들을 가져오면, 거기서부터는  우리가 운반할 수단을 제공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우리 엔지니어 두 명을 고용하시겠다고 하셨죠?"

"예. 그 프로젝트가 완성되는 석 달 동안이면 됩니다."

"노련한 기술자들이 갈 테니까 잘 해 낼 것입니다."

와그너 박사는 간단히 메모를 했다.

"이제 다른 문제가 두 가지 쯤 더 있습니다만 ..."

와그너 박사가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수도승은 작고 얄팍한 종이를 한 장 꺼냈다.

"이건 아시아 은행의 예금잔고 증명입니다."

"고맙습니다. 음, 적당해 보이는군요. 나머지 문제는 매우 사소한 것 이라서 이야기하기가 좀 망설여 집니다만, 종종 생각지도 못한 것 때문에 낭패가 되는 경우도 있어서 말이지요. 저, 전력은 어떻게 공급하고 계십니까?"

"110볼트에 50킬로와트를 내는 디젤식 발전기가 있습니다. 50년 전에 설치한 것인데 지금도 꽤 쓸만합니다. 그것때문에 라마 사원에 있는 사람들이 훨씬 편한 생활을 하고 있지요. 물론 그것은 경전의 내용이  적혀 있는 회전식 예배기를 돌리는 모터에 동력을 제공하기 위해  설치된 것입니다."

"물론 그렇겠지요. 당연한 것이지요."

와그너 박사는 얼른 되받아 말했다.


그 절벽에서 내려다 보는 광경은 현기증나는 것이었으나 사람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떤 것에도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석 달이 지난 뒤 조지 헨리는 2천피트의 높이로 까마득히 솟아있는 절벽이나, 저 멀리  계곡 아래에 펼쳐진 서양장기판 같은 들판에도 별로 감동하지 않았다. 그는 바람에 깎여 반반해진 바위에 등을 기댄 채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들을 시무룩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한번도 그 산들 이름을 알아내려고 애써보지 않았다. 조지는 지금이 그동안 그에게 일어났던 일들 중에서 가장 미칠 지경이라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지상낙원 프로젝트."

실험실에서 어떤 재치있는 사람이 이렇게 명명했다. 지금 몇 주일째 [마크 5] 컴퓨터는 뜻 모를 말로 빽빽히 뒤덮인  종이들을  소란스럽게 토해 내고 있었다. 그 컴퓨터는 참을성있게 꿈쩍도 하지않고 가능한 모든 문자의 조합을 맞추어 보고, 다음 조합들로 넘어가기 전에 각각의 항목들을 샅샅이 조사하면서 문자와 조합들을 재정돈하고 있었다. 목록이 프린터에서 찍혀 나올 때마다 수도승들은 조심스럽게 그것들을 잘라서 거대한 책에다 풀로 붙였다. 고맙게도 한 주만 더 지나면 모든 일이 끝난다. 그렇게되면 수도승들은 조지가 알지못하는 열, 스물, 혹은 백 개의 글자들을 갖고 아무 의미없는 작업을 계속하느라 애 쓸 필요가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갑자기 라마승이 나타나서는, 계획이 좀 변경되어 작업을 서기 2060년까지 계속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악몽을 꾸기도 했다. 사실은 정말 그럴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조지는 무거운 나무문이 바람에 쾅 하고 닫히는 소리를 들었다. 처크였다. 그는 난간에 서 있던 조지의 옆으로 다가왔다. 처크는 보통 때처럼 담배 한 대를 물고 있었는데, 그 담배 때문에 그는 수도승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수도승들은 인생의 크고 작은 모든 즐거움들을 기꺼이 포용하는 것처럼 보였다. 담배는 그들이 상당히 마음에 들어했던 것들 중 하나였다. 그들은 열정적인 것 같았으나 청교도적이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그들이 자주 마을에 다녀 오곤 하는 것만 봐도 그랬다.

"이봐, 조지."

처크가 다급하게 불렀다.

"문제가 뭔지 알아냈어 ."

"문제라니, 무슨 문제? 기계가 돌아가질 않아?"

그것은 조지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사고였다. 그렇게되면 귀환이 연기되는 것이다. 그것 이상으로 끔찍한 일은 있을 수 없었다. TV의 상업광고 한 장면이라도 지금 그에게는 몹시도 간절한 것이었다. 적어도 그것은 고향과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으니까.

"아니야. 그런것이 아니야."

처크는 난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평소에는 떨어질까봐 두려워했으므로 그것은 상당히 예외적인 행동이었다.

"나는 이 일에 관한 모든 것을 알아냈다구."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우린 이미 알고 있잖아?"

"물론 우리는 수도승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 그러나 그  일을 왜 하는지 이유는 모르잖아. 이건 미친짓이라구."

"도대체 뭐야? 속 시원히 말해봐."

조지는 투덜거리며 말했다.

"늙은 수도승이 내게 털어놓았다구. 그가 새로 나온  목록을  보려고 매일 오후에 여기 들리는 거 알지? 그런데 이번에는 약간 흥분해  있었어. 아니면 적어도 흥분에 도달하기 직전이었던 것 같아. 그에게  작업이 거의 마지막까지 왔다고 말해 줬더니 능숙한 영어로 묻더군. 자기네들이 왜 이 일을 하는지 궁금하지 않냐고. 난 물론 궁금하다고  대답했지. 그랬더니 그가 나에게 말해주었어."

"잠자코 들을테니 계속 말해 봐."

"그는 신들의 모든 이름을 목록으로 작성하는 작업을 마치면 신의 목적이 성취되는 거라고 믿고 있어. 그리고 그들은 신들의  이름이  모두 합쳐 약 90억 개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 작업을 마치면 인류는 스스로가 창조된 목적을 달성하게 되는 것이라는군. 더 이상 수행할 일이 없어진대. 다른 일을 생각하는 것은 신성모독과  같은  것이라구  하더군."

"그럼 그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바라는거지? 일이 다 끝나면 자살이라도 하라는 건가?"

"그럴 필요는 없어. 그 목록이 완성되면 신이 직접 끼어들어  간단히 모든 것을 끝장낼 테니까...한 순간에 휙!"

"아, 알겠어. 우리가 일을 다 마치면, 그 때가 바로  세상의  종말이 되는 것이라 그거군."

처크는 신경질적인 코웃음을 던졌다.

"바로 내가 그 수도승에게 그렇게 얘기했지. 그랬더니 어쨌는 줄  알아? 그가 매우 야릇한 눈초리로 나를 노려보는 거야. 내가 마치 학교의 열등생이라도 된 것처럼. 그리고는 '그건 그렇게 사소한 일이  아니오' 라고 말했어."

조지는 잠시동안 곰곰히 생각했다.

"그것이 내가 대략적으로 알아본 것이지."

"그렇다면 자네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그것 때문에 우리가 달라질 건 없잖아. 결국 그들이 미쳤다는 얘기 아냐?"

"그래. 그러나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뻔히 보이지 않나?  그  목록이 완성되었는데도 종말의 나팔이 불지 않으면, 그들이 기대하는 게  나팔 소리든 뭐든 간에, 비난 받는 것은 우리야.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기계거든. 나는 그런 상황이 오는 것을 조금도 바라지 않아."

"알겠어."

조지가 천천히 말했다.

"자네가 말하려는 요점은 그거로군. 그러나 자네도 알다시피 이런 종류의 일은 그 전에도 있었지. 내가 어릴 때 루이지애나에서 다음 주 일요일에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말하던 정신이 돈 목사가 있었네. 수  백명의 사람들이 그를 믿고 따랐지. 집을 팔 정도로.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그들은 자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일상생활로 돌아가지는 않았어. 그들은 그 목사가 계산을 잘못했다고 생각하고는 계속 그 말을 믿었어. 아마 아직도 그 말을 믿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을 거야."

"그렇지만 이곳은 루이지애나가 아니야. 우리는 둘 뿐이고  수도승들은 수 백 명이야. 나는 그들을 좋아하네. 좋은 사람들이지. 나이  많은 수도승의 생의 과업이 허망하게 실패로 끝나는 것을 보면 나도 마음이 아플거야. 나는 어디 다른 곳에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네."

"나도 여러 주 동안 그걸 바라고 있었지. 그러나 계약이 끝나고 우리를 데려갈 비행기가 도착할 때까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아무 것도 없잖나."

"물론이지. 그러나 우리는 일종의 태업을 일으킬 수가 있어."

처크는 사려깊게 이야기했다.

"태업이라고? 원, 젠장! 그건 사태를 더 악화시킬 뿐이야."

"그게 아니야. 이걸 한번 생각해 봐. 컴퓨터를 지금처럼 하루 20시간 작동시키면 앞으로 나흘 안에 작업을 끝마칠거야. 그런데 우리를  태울 비행기는 일주일 뒤에나 오게 되어 있잖아? 바로  이거라구.  그러니까 우리가 할 일은, 뭔가 수리할수리를 하긴 하지. 그러나 너무  빠르지 않게 말이야. 만약 우리가 적당히 시간을 벌면, 우리는 마지막  목록이 찍혀 나올 때쯤 비행장에 도착할 수 있을 거야."

조지가 말했다.

"난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군. 내가 일하다가 일부러 그런 일을 저지른 적은 없는데. 게다가 그들이 의심할지도 모르고. 아냐, 나는 꼼짝하지 않고 앉아서 무엇이 닥쳐오나 지켜보겠어."


7일이 지난 뒤, 그들은 조그마한 조랑말을 타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조지가 입을 열었다.

"나는 여전히 기분이 좋지 않아. 내가 두려워서 도망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나? 나는 저 위에 있는 가엾고 늙은 사내들이 불쌍할 뿐일세. 자신들이 얼마나 멍청했는지를 알게 되었을 때 옆에 같이 있어주고 싶다구. 그 늙은 승려가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지 않나?" 

"참 재미있더군."

처크가 대답했다.

"내가 작별인사를 할 때 보니까, 그는 우리가 자기들로부터 도망가는 거라는 사실을 아는 눈치였어. 그리고 컴퓨터의 작업 속도를 일부러 늦춘 것도. 하긴 작업은 거의 끝이 났다는 것도 알고  있었으니까...아무튼 전혀 걱정하는 기색이 없더군. 모든 신의 이름들을 다 기록하는 작업이 끝나면, 그 뒤는 아무 것도 없다는 태도였어. '그  뒤'라는  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

조지는 말 안장에서 고개를 돌려 등 뒤의 산길을 응시했다. 그  곳은 라마승들을 뚜렷하게 볼 수 있는 마지막 장소였다. 작달막하고 둥근 건물들이 황혼을 배경으로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원양 여객선의  현창들처럼 건물에 난 둥근 창들이 빛나고 있었다. [마크 5] 컴퓨터와 같은 발전기에서 전기를 공급받고 있는 저 전기불들은 얼마나 더 빛을  내게 될까? 조지는 궁금했다. 라마승들은 실망과 분노로 컴퓨터를  부숴버리지 않을까? 지금 저 산 위에서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는 안 보고도 알 수 있다. 라마승들이 비단 승복을 입은 채 모여 앉아 컴퓨터가 찍어 낸 종이들을 커다란 책에다 옮겨 붙이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종이에는 문자들의 조합이 빽빽하게 찍혀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신들의  이름이 찍혀 있는 것이다. 승려들은 모두 그 종이를 주의깊게 살펴보고  있을 것이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은 채. 오로지 프린터가 문자를 찍어대는 소리만이 침묵을 깨고 있을 것이다. [마크 5] 컴퓨터는 1초  당  수천 번의 연산을 하며 번쩍거리지만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는다. 라마승들 처럼. 이런 곳에서 석 달을 보냈다니, 아마 벽을 기어오르는 법이라도 배울 수 있었을 거야. 조지는 쓴웃음을 지었다.

"바로 저기 있다! 오, 나의 사랑스러운 비행기여!"

골짜기 아래를 가리키며 처크가 외쳤다.

조지의 눈에도 분명히 비행기가 보였다. 찌그러지고 오래된 DC-3기가 조그마한 십자가처럼 길 저쪽 끝에 앉아 있었다. 두 시간 안에 그 비행기는 자유와 온전한 정신을 가진 문명 세계로 그들을 데려다  줄  것이다. 감미로운 술을 맛보는 것처럼 생각만해도 기분이 좋았다. 조랑말이 내리막 길을 참을성있게 터덜터덜 내려갈 때, 그 위에 탄 조지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히말라야 고산 지대에선 밤이 빨리 다가온다. 다행히도 길의 상태는 매우 좋았다. 추위가 좀 심해서 불편할 뿐, 위험한 것이라곤 조금도 없었다. 머리 위 하늘은 아주 맑아서 눈에 익은 친숙한 별들이  다정스럽게 빛나고 있었다. 조지가 생각하기에 적어도 날씨 때문에 비행기가 이륙하지 못할 염려는 전혀 없었다. 사실 그 점이  유일한  걱정거리였는데.

그는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가 잠시 뒤 그만두었다.  사방에 흰 수건을 쓴 유령같은 것들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는 이 광대한 지역에서는 그런 식으로 흥겨움을 북돋워 낼 수가 없었다.  조지는  슬쩍 시계를 보았다.

"한 시간 남았군."

그는 어깨 너머로 처크를 흘낏 돌아보곤 잠시 생각한 뒤에 덧붙였다.

"컴퓨터가 작업을 마쳤는지 궁금하군. 아마 지금쯤은 다 마감했을 것 같은데."

처크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으므로, 조지는 안장에서 몸을 빙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하늘을 향해 쳐들려진 처크의 턱과 하얀 계란같은 얼굴이 보였다.

"저기 좀 보게."

처크가 들릴듯 말듯 속삭였다. 그래서 조지는 눈을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모든 것에는 항상 마지막 때가 있는 법이다.)

머리 위 하늘에서 하나 둘씩 별들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