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끔하게 연한, 푸른 색의 가을 하늘에 물을 많이 써서 그린 수채화마냥, 하얀 구름이 묽게 퍼져있는 계절은 어느덧 완연한 가을,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음악을 한다는 곤티티의 여유로운 기타소리에 느긋한 따뜻한 햇살, 나를 유혹하는 것은 월요일 오후의 경춘선 열차...
그러니까 출발하기도 전에 막상 춘천에 가서 뭐하지 라며 쓸데없는 생각만 하는 것 보단 일단 무작정 창구에서 39분 즈음, 40분 출발 열차표를 간신히 끊자마자 들려오는 구내 방송 "2시 40분 춘천행 열차가 지금 출발할 예정이오니..." 와 동시에 "얼른 뛰어가세요" 라며 다급한 목소리의 매표원 목소리
숨쉴틈도 없이 막 출발하려하는 기차까지 단숨에 달려가, 숨을 헐떡이며 겨우 플랫폼을 밟고 올라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기차표를 확인하고 자리를 찾아 앉으려는 순간, 순간 아차. 매표소에 두고온 지갑을 생각해내고.... 아아 이건 뻥이고, 일단 표를 사고 달리는 순간, 가서 뭐하지 하는 걱정은 사라지고, 저질러 놓은 상황에 대해 나름대로의 여러가지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옆자리의 어여쁜 여학생을 발견한다 던지 하는.... 아. 농담), 그러니깐 백날 생각만 하는 것 보단 '최선의 선택'은 아닐지라도 적당한 선에서 결정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
춘천이라 하면, 그냥 막연히 춘천닭갈비, 소양강댐, 호반의 도시, 중도....등의 단어들이 멍하니 떠오르는데, 뭐 그런건 일단 제쳐두고, 괜한 막연한 환상을 가지게 된 것은 중학교때 정말 즐겁게 봤던 드라마 '나'의 배경이 일단 춘천...또한 역시 좋아하던 TV시리즈 '베스트극장'의 무대로서 자주 등장하던 것이 또 춘천 (춘천MBC이기 때문일까), 중학교때 활동했던 '국토순례반' (아, 내가 이런 적도 있긴 있었다) 에서 갔었던 중도에서의 뭔가 낭만적이던 기억의 환상과 더불어 결정적인 역활은 한 것은 무엇보다도 김현철의 '춘천가는 기차' 여기서게임오버...
몇번인가 가본 적은 있지만, 친구들과 함께라던지 뭐 그래서 '제대로'가본 적이 없었기에,
"차라리 혼자도 좋겠네..." 라는 노래 가사에 넘어가버려, 나름대로의 기대를 가지고 출발,
아무튼, 일단 흐르는 땀을 닦으며 자리에 앉고 나니 역시 썩 기분이 괜찮은 것이 무엇보다도 하늘이 말끔하니 높은 것이 역시 기차를 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딘가 약간은 느린듯한 느낌의 무궁화호의 리듬에 맞추어 주기적으로 지나가는 가을... 무렵의 녹색빛 배경들에 온통 푸른 하늘은 강한듯 밝지만 부드러운 햇볕에 저멀리 산에 있는 나무들의 초록색 잎들이 하나하나 보일 정도로 한껏 화창한 가을 날씨.
때마침 CDP에서 들려오는 조규찬의 Drive...
..는 주말내내 잔뜩 찌뿌렸던 마음을 여유롭게 해주는 자유, 이번 2학기를 시작하면서,한달간, 한가지(...) 생각에 온통 마음을 빼앗겨버려 정신없이 (비록 시간은 많았지만 정신적으론) 지내온 9월달이었는데, '달'이 바뀌기 전에 분명하고 확실하게 정리를 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었다.
사실 어떤 고민거리나 문제가 있을때, 여행이란 것은 현실도피랄까? 당연한 얘기로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직접적으로 그 문제를 해결해낼 생각을 해야지, 어디 멀리, 혹은 가까이에 다녀온다고 저절로해결되는 법은 없기에 별 도움은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일단 그런 잡다한 생각은 일단 제쳐두고 기차라도 타고서 출발하고 나면, 뭔가 시야가 넓어지며, 여러 생각들을 저절로 정리될 수 있는 시간이 되는 것도 사실이기에 무작정 월요일 오후의 기차를 탔던 것이다.
CDP에서 흘러나오는 흘러간 가요들(아쉽게도 '주제가'는 없었지만.)을 들으며,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며 마침 가방 속에 들어 있던 수필집을 읽다보니, 2시간 가량이 순식간에 지나고 3시반 정도에 춘천에 도착하였다.
처음엔 예상외의 역의 그 소박함에 놀랐고, 그 뒤 역밖의 황량함에 움찔...
아무튼 상상외였는데, 역시나 막상 도착해보니 무작정 떠난 탓으로 어딜가야...뭘해야..할지 모르고, 막막함에 잠시 서성이다(...) 안내소로 가서 지도를 얻어옴.
딱히 가보고 싶다거나 해서 떠난게 아니라 그저 날씨가 너무 좋고, 마침 시간이 남아서 (...) 출발했던 터이라, 막연히 '청평사'를 한 번 가보자 라는 생각으로 택시를 잡아 타고, 3시 45분에 출발. 기사 아저씨는 4시 배가 있으니깐 충분히 갈 수 있다고 하셨지만,
결국 4시 5분 도착, 우후후, 4시 반에 마지막 배가 있다는 말에 바로 표를 샀으나, 그쪽에서 나오는 오늘의 마지막 배가 5시 반이라는 말은 가서 35분 정도 있다가 바로 나오는 배타고 돌아와야 한다는 뜻... 5분간 고민후, 다시 환불... (...) 우후후... 택시까지 잡아 타고 여긴 왜온건지...라는 생각이 살짝 들었다. 하지만, 뭐 그래도 좋아라. 하늘은 파랗고 흰구름이 낮게 떠있는 오늘은 나는야 좋아라. 우후후
아닌게 아니라 뭐 '관광'을 하려 했던게 아니니깐, 어?든 좋은 것이다. 나에겐 그저 이렇게 맑은 날 여기저기 걸어 다니며, 방황을 하는 것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니깐. 아마도 당분간은 이런 시간이 나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에 그 여유를 충분히 만끽하고 싶었다.뭐 결론적으로 이곳저곳 기웃기웃거리다가 저녁 7시 무렵의, 서울가는 기차를 타고 돌아왔는데, 그다지 쓸만한 거리는 별로 없으므로 간략히 적어보자면...
...해서 선착장에서 소양강 댐으로 천천히 걸어나와서 시내로 돌아가는 버스를 탈까 하다가, 좀 더 햇볕을 쬐고 싶어서 아래까지 걸어가기로 하고 이어폰을 끼고,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걷다가 시내까지 태워주시겠다는 분을 중간에 만나, 5시 무렵 시청쪽으로 내려와서, 명동을 통하여 공지천으로 향했는데, 이때쯤, 하늘에 구름이 많이 끼기 시작하며, 맑았던 날씨가 금새 흐려졌다.
어쨌든 하루종일 혼자서 신나게 걸어다니며 이것 저것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되었지만, 월요일이라 한적했기 때문일까, 하늘이 잔뜩 흐려진 저녁 무렵의 춘천은 너무 쓸쓸했는데. 아니 그보단 내 마음이 더 쓸쓸했던 탓일지도...
저녁 무렵엔 왠지 점점외로운 마음에, 조금은 우울해져서, 서둘러 춘천 역으로 돌아와 서울행 열차표를 끊어서 돌아왔다. BGM은 팻메스니의 Last train home.... 뭐 역시나 '마지막' 열차는 아니었지만, 어?든 이역시 집으로 오는 길엔 반드시 들어줘야만 하는 '주제가'.
여행을 그리 많이 다녀보진 못했지만,항상 어디 멀리 나갔다가 '저녁' 혹은 '밤'에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안의 그 어두운 형광등 불빛에 더불어 피곤한 모습으로 잠이든 여행객들의 모습은 어딘가 굉장히 애처로운 느낌이라 쓸쓸한 마음이 더 커져 버린 여행의 마무리 였다.
출발할 때의 기대와는 달리, 그다지 신나는 여행 (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쨌든) 은 되지 못했지만, 뭐 어찌되었든 나로선 단지 서울이 아닌 다른 곳을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으니 좋았다. 무엇보다도 고등학교 졸업한 후, 들었던 '춘천가는 기차'에 대한 환상을 확인해 볼 수 있었던 것으로도 충분히 좋았고, 음악을 들으며 가졌던 상상을 이제야 비로소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던 것만으로 만족이었고 또한 이것으로서 난 또 한걸음 내딛을 수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It's OK." (from Eternal Sunshine on the Spotless Mind)
아하...다 좋았는데 지금 보니 돌아오는 길에 술한잔 하는 것을 깜빡했고나. 저런 아쉬워라.
하지만 아마도 당분간은 갈 일이 없을테지, 올 겨울을 노리자. 우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