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음..개강을 했음에도 기분도 안나고, 머릿속도 쓸데없이 복잡하고
무엇보다도 '단호한결의'가 부족하야...
저번주 주말을 이용해서 살짝쿵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때마침 뉴스에서는 강원도 지방에 3월초 때아닌 몇십년(..?)만의 대폭설!폭설주의보인지 뭔지가 내리고 교통이 끊기고, 마을이 고립되었다는 등의 심상치 않은 소식들이 속보로 속속히 전해지는 와중이라, 고민을 30분정도 하긴했습니다만, 토요일 낮에 과감히 korail로 들어가 예매를 했지요.
봄이 오는 길목에 모처럼 완전히 겨울이 가버리기 전에, 눈을 한번 더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목적지는 당연히 폭설주의보가 내려진 강원도! (눈을 한번 더 보고 싶다정도보단 좀 많이 과한 느낌-_-;)
일정은 토요일밤 11시 강릉행 기차를 타고 출발
새벽5시반 정동진도착, 그후 일정잡기가 좀 애매해서 이왕 강원도 까지 간김에 예전부터 궁금했던 '구절리'를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어디선가 설명을 듣기론 '꼬마열차'를 갈아타고, 산골짜기 깊숙히 있는 '강원도 오지의 끝역'으로 가는 코스라고,눈이라도 오면 경치가 또한 아주 그만이라고 해서, 뭔가 환상을 가지고 있었지요. 아 왜 영화 철도원의 그 새하얗게 눈내리던 기차역 광경이라던가...(등등등...)
그곳으로 가기위해선 태백 근방의 증산역에서 기차를 갈아타야하고 그쪽으로 들어가는 기차가 하루에 한번 있더라구요. 그래서
일요일 오전 11시, 정동진에서 출발
오후 1시30분 증산역 도착
오후 2시 구절리행을 갈아타고
오후 3시 목적지 도착, 한시간 후
오후 4시 목적지 출발,
오후 5시 증산 도착 청량리행 무궁화호를 타고 서울로 도착하면 밤 9시10분 이라는
계획을 세우고 표를 예매하였습니다. (다만 구절리행 열차가 몇년전에 없어졌다기에 최종 목적지는 구절리 앞역인 '아오라지'로 결정)
너무나도 오랜만의 기차여행인지라, 더구나 이 나이(...)가 되도록 혼자 떠나는 여행은 처음이었던지라 두근두근, 기분좋은 두근거림
예매를 하고나선 간단히 짐(이랄 것도 없었지만)을 싸고, 들을 CD들을 챙기다보니 금새 밤10시가 되었습니다. 이번 여행의 BGM으로 선택한 곡들은
FreeTEMPO-Oriental Quaint
SOUND PROVIDERS -An Evening With The Sound Providers
4월이야기 OST
Vanilla Sky OST
Cafe Alpha OST
.... 등등 으로, 뭐 혼자 떠나는 기차여행, CDP,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편안한 음악들은 뭐 예전부터 어렴풋이 가지고 있던 여행의 로망이 아니겠습니까 (으하) 이 음악들 덕분에 여행이 한층 더 즐거워졌지요, 뭐 영화들보면(특히 이와이 ??지감독의..) 배경음악이 나옴으로써 더 분위기도 나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저도 일상의BGM이랄까,별것없는 일상이라도 지금 이것이 영화의 한장면이라면 어떨까 하고 상상하면 좀더 삶이 즐거워 지는 것 같아서요,
..다.만. 사실 음악은 기차에서 이동하는 중에만 듣고, 도착해서는 이어폰을 빼버리고, 그 동네 파도소리, 바람소리, 뽀드득 눈 밟히는 소리들을 듣고 다녔어요(하하).
간단히 가방에다가 챙겨 넣고선집에서 나선 시각이 토요일 밤 10시 정각.
조금 늦게 출발한듯 하여 혹시나 기차시각에 늦으면 어쩔까 걱정했습니다만,
출발지인 청량리 역으로 도착하니 10시40분 정도,
바로 예매한 차표를 매표소에서 찾고선 간식거리와 음료수를 사왔더니 10시 55분
딱 맞춰서 기차를 타는데, 맞은편 선로를 보니
막 강릉에서온 기차, 눈이 수북히 쌓여있고 고드름이 주렁주렁, 열차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며, 덜덜덜 마치 예전 TV에서 본 무슨 러시아쪽 시베리아행 특급열차같은 분위기, 기대감이 아주 증폭되었지요.
2.
대학 처음 입학할 때의 대표적인 잘못된 상상의 예, 푸르른 녹음의 따스한 캠퍼스에서
여학우들과 '잔디밭'에 오손도손 모여앉아, 까르르 담소를 나누는 모습, 혹은 동아리, 아리따운 선배 누나와의 로맨스.... 들과 마찬가지로
또 혼자떠나는 기차여행, 우연히 같은 좌석에함께 앉게된 그녀...."어디까지 가세요" 로 말문이 튼 둘은......하며 스토리가 시작이 되는 것이 또한 홀로기차여행의 대표적 잘못된 상상, (물론 이 잘못된 상상은 비포선라이즈 탓이 크디크다.)
...뭐 기대한건 아닌데 (기대했다), 그래도 혹시나 하며 예매해둔 표를 꺼내어 27번 좌석을 찾았는데, 뭐 '혹시나'가 나왔으니 이젠 '역시나'가 나올 차례, 그것이 세상의 이치(이치는 무슨이치;)
역시나 옆좌석엔 정장을 입으신 나이 지긋하신 신사분께서 앉아계셨습니다.
뭐 살짝쿵 실망은 했지만, 언제나 상상과 현실과는 엄연한 차이가 있는 법이니까요.
나뿐만 아니라 서로 실망했을지도 (하하하 이건 아닌가)
아무튼 그렇게 여행은 시작을 했습니다.
3.
했습니다...만.. 서울 근방은 뭐 항상봐오던 도시속 풍경, 게다가 밤... 볼것도 없었기에 잠이 들었습니다. 대충 새벽 3시 정도에 깨보니, 히야 정말 눈이 많이 쌓인 풍경이 창 밖으로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한밤중의 기차 창 밖 멀리, 점점이 켜져있는 붉은 조명에 비치는 눈이쌓인 3월의 적막한 강원도 정경은 꽤나 운치가 있었습니다. 어찌나 멋지던지요, 어두워 사진으로 못찍은 것이 아쉽긴 합니다만, 사진찍는것 보다 더 중요한 건, 바로 그 순간 충분히 마음으로 느껴두는 것이니깐요. 정말 멋진 광경이었어요, 그렇게 감탄하며 달리다 보니 4시 즈음 태백에 도착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이 곳에서 내리셨어요.
음 이때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사진으로 보시죠.
새벽4시 무렵, 태백에서
새벽 5시 40분 쯤, 드디어 정동진에 도착했습니다.
정동진의 그 '언덕위에 떠있는 배', 마침 초승달이 하늘에 떠있어서 잘어울리는 모습이었습니다....만 사진이 흔들흔들
PC방이라도 들어갈까 했지만 시간이 애매해서 조금 바닷가를 서성이며 해를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6시20분 서서히 동이 터오는 모습, 정말 멋졌다구요~
일요일 새벽은 다행히도 날씨가 맑게 개어서, 제대로된 해돋이를 볼수 있었습니다. 최고였죠!
밝아진후, 눈덮인 풍경이 드러났는데, 상투적 표현이긴 합니다만 동화속의 세상이 이럴까 싶었습니다. 정동진의 그 볼것없고 지저분한 풍경(...)이 하얗고 두꺼운 눈속에 파묻혀서 정말 아름다웠어요.
밝아진후 여기저기를 감탄하며 홀로 돌아다니다가 식당으로 들어가서 '뼈다귀해장국'을 먹었습니다. 맛있었지요. 식사를 기다리며 찍은 기차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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